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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자와에서 『종이달』 – 단정한 도시, 무너질 틈마저 아름다운 가나자와는 한적하고 단정한 도시입니다. 도쿄나 오사카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그 고요함 속에 견고한 내면을 품고 있습니다. 일본 3대 정원 중 하나인 겐로쿠엔과 전통 찻집 거리 히가시차야가이, 그리고 현대적 감각이 흐르는 21세기 미술관까지, 고전과 현대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도시. 그 균형 속에서 나는 가쿠타 미쓰요의 『종이달』을 떠올렸습니다. 완벽해 보이는 일상, 하지만 그 안에 틈처럼 스며든 외로움과 균열. 이 도시의 풍경은 마치 소설 속 주인공 ‘리카’의 감정처럼, 단정한 겉모습 아래 흔들리는 내면을 닮아 있었습니다.1. 겐로쿠엔 – 정원의 조화, 마음의 균열겐로쿠엔은 보기 드문 정갈함을 지닌 일본식 정원입니다. 그러나 그 조화로운 풍경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곳곳에 ‘의도된 틈’이 있다는 것을 알게.. 2025. 4. 26.
마츠야마에서 『도련님』 – 유쾌하게 고집스러운, 그 청춘의 도시 도련님은 정직했고, 그래서 외로웠습니다. 나츠메 소세키의 대표작 『도련님』은 일본 근대문학 속에서 유쾌하지만 진중한 청춘의 초상을 보여줍니다. 특히 ‘지방 도시’의 풍경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관계의 미묘함, 권위에 저항하며 살아가는 인물의 고집은 100년이 넘은 지금도 신선하죠. 그리고 그 이야기의 무대가 바로 시코쿠 마츠야마입니다. 시코쿠에서 가장 온화한 기후를 자랑하는 도시, 도고 온천의 따뜻함과 마쓰야마 성의 정갈함이 함께 공존하는 이곳은 『도련님』의 시대적 배경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 도시는 마치 도련님의 마음처럼 단순하지만 복잡하고, 조용하지만 생생합니다. 그 정직한 서사를 품은 마츠야마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1. 도고 온천 – 따뜻함의 깊이를 배운 곳도고 온천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2025. 4. 26.
포항에서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 해가 뜨는 자리에서 사유하다 포항은 해가 먼저 도착하는 도시입니다. 동쪽의 바다는 아침을 가장 먼저 품고, 사람들은 그 해를 보기 위해 호미곶으로 모입니다. 김영민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그런 포항과 닮아 있는 책입니다. 새벽, 죽음, 고요함, 그리고 사유. 이 책은 인생이라는 이름 아래 질문을 던지는 글이며, 포항의 동해 바다 앞에서 떠오르는 생각과 잘 겹쳐지는 기분이 듭니다. 해가 떠오르며 세상을 밝히듯, 때로는 어두운 생각들이 우리 삶의 윤곽을 더 뚜렷하게 만듭니다. 포항에서의 여행은 그런 '사유와 함께 하는 여행'이 되었습니다.1. 호미곶 – 죽음을 생각하는 아침호미곶의 새벽은 고요하고 엄숙합니다. 해가 수평선 위로 떠오를 때, 사람들은 고요해집니다. 사진을 찍는 것도, 말을 건네는 것도 잠시 멈춥니다. .. 2025. 4. 25.
울산에서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울산이라는 도시에는 독특한 이중성이 있습니다. 산업단지와 푸른 바다, 뿌연 매연과 투명한 하늘, 묵묵한 일상과 꿈꾸는 시선이 공존합니다. 그런 도시의 분위기는 김초엽 작가의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과 맞닿아 있습니다. 과학과 감정, 기술과 인간이라는 양극을 정제된 언어로 잇는 이 책은 도시 울산의 얼굴과 겹쳐집니다. 울산은 김초엽 작가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작가가 묘사하는 세계의 기저엔 언제나 현실적이고 지역적인 감성이 흐릅니다. 이번 여행은 거대한 구조물과 철제의 풍경 속에서 여전히 사람 냄새가 나는 도시 울산을 따라, 김초엽의 문장을 곱씹으며 가보려 합니다. 과학적 상상력 뒤에 감춰진 감정의 궤적을 쫓듯, 나는 이 도시의 이면을 천천히 걸었습니다.1. 장생포 고래문화특구 – 기억의 잔상과.. 2025. 4. 25.
울릉도에서 『섬, 짓다』 – 고립의 시간, 밀도의 여행 섬은 뭍과 떨어져 있다는 이유만으로 고립되고 때로는 신비롭게 여겨집니다. 그러나 조용헌의 『섬, 짓다』는 섬을 또 하나의 문명 공간이자 기억의 보관소로 바라봅니다. 울릉도는 그런 의미에서 한 편의 살아 있는 ‘섬서(島書)’입니다. 대륙과는 분리되어 있지만, 그 안에만 존재하는 시간과 풍경, 관계와 언어가 있습니다. 이번 여행은 바다로 둘러싸인 울릉도 안에서 고립이 아닌 밀도를 경험한 여정이었습니다. 조용헌의 문장을 따라가며, 섬이 가진 본질을 찾아 걸어보았습니다.1. 도동항 – 바다의 첫 문을 열다배에서 내린 첫 장면은 도동항이었습니다. 짙은 바닷바람과 조밀한 지붕들, 그리고 생각보다 높게 솟은 산세가 동시에 다가왔습니다. 울릉도는 바다에 뜬 산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닐만큼 웅잡합니다. 조용헌은 섬을 “.. 2025. 4. 24.
양양에서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 바람의 속도로 마음을 걷다 양양은 바람의 도시입니다. 파도가 부서지는 해변, 소나무 숲을 스치는 바람, 사찰의 돌담 사이를 흐르는 바람까지, 이곳은 늘 바람과 함께 존재합니다. 이병률의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양양의 풍경과 어우러지는 책입니다. 이 책은 떠남과 고요, 외로움 속에서 피어나는 생의 따뜻한 온기를 이야기합니다. 양양은 그런 문장을 품는 공간입니다. 여행은 어느 순간 목적지를 찾기보다, 흐름에 자신을 맡기는 일이라는 걸 이곳에서 알게 된 것 같습니다.1. 죽도 해변 – 파도와 바람이 부딪히는 자리양양의 죽도 해변은 늘 움직입니다. 서핑보드 위의 사람들과 부서지는 파도, 모래를 따라 스쳐 가는 바람은 이곳을 정지되지 않는 풍경으로 만듭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감정을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 2025. 4.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