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은 뭍과 떨어져 있다는 이유만으로 고립되고 때로는 신비롭게 여겨집니다. 그러나 조용헌의 『섬, 짓다』는 섬을 또 하나의 문명 공간이자 기억의 보관소로 바라봅니다. 울릉도는 그런 의미에서 한 편의 살아 있는 ‘섬서(島書)’입니다. 대륙과는 분리되어 있지만, 그 안에만 존재하는 시간과 풍경, 관계와 언어가 있습니다. 이번 여행은 바다로 둘러싸인 울릉도 안에서 고립이 아닌 밀도를 경험한 여정이었습니다. 조용헌의 문장을 따라가며, 섬이 가진 본질을 찾아 걸어보았습니다.
1. 도동항 – 바다의 첫 문을 열다
배에서 내린 첫 장면은 도동항이었습니다. 짙은 바닷바람과 조밀한 지붕들, 그리고 생각보다 높게 솟은 산세가 동시에 다가왔습니다. 울릉도는 바다에 뜬 산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닐만큼 웅잡합니다. 조용헌은 섬을 “절연의 공간”이라고도 했죠. 도동항은 그 절연의 입구입니다. 바다는 이 섬을 세상과 분리시켰지만, 그만큼 독립적인 시간을 선물해 줍니다. 섬의 첫걸음은 도착이 아닌 진입에 가까웠습니다. 바다가 끊고, 발이 닿는 순간부터 울릉도의 시간은 따로 흘러가는 것 같았습니다. 배편의 불규칙함조차 이곳에선 섬의 질서인 듯했습니다.
도동항의 골목을 조금만 들어서면, 작은 식당과 오래된 찻집이 눈에 띕니다. 그 공간 안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바다의 파도소리와는 무척이나 다릅니다. 그것은 사람이 만든 온기와 섬의 기후가 섞인 삶의 소리였습니다. 섬의 시작이 항구였다면, 진짜 섬의 감각은 이렇게 일상의 틈에서 느껴집니다. 조용헌은 “섬은 말보다는 기운으로 읽는다”고 말했습니다. 도동항에서는 그런 기운이 몸으로 와닿는 것 같았습니다. 빠르게 지나치는 관광지가 아닌, 천천히 들어가는 생활의 공간으로서의 섬. 이곳의 첫인상은 곧 섬의 깊이를 알려주는 신호였습니다.
2. 성인봉 – 섬 안의 또 다른 봉우리
울릉도 중심에 우뚝 솟은 성인봉은 섬이 가진 내밀한 정체성입니다. 고립된 땅에서 더 고립된 꼭대기. 정상에 오르면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풍경이 펼쳐집니다. 마치 세계의 끝자락에서 안쪽을 응시하는 기분입니다. 『섬, 짓다』는 섬이 “안으로만 자라는 공간”이라고 말합니다. 육지는 확장을 꿈꾸지만, 섬은 응축을 통해 깊어지는 장소인 것이죠. 성인봉 정상에서 느낀 감정은 외로움이 아니라 집중이었습니다. 외부와의 끊김은 곧 자신과의 연결로 이어집니다. 섬의 중심은 언제나 스스로를 내부로 불러들이는 신비로운 곳입니다.
성인봉으로 향하는 산길은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 뿌리째 드러난 나무, 그 사이로 흐르는 미세한 바람은 도시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감각입니다. 성인봉은 해발 984m. 작지 않은 봉우리입니다. 섬 안에서 이 정도 고도를 가진 산은 흔치 않습니다. 산을 오르며 점점 고요해지는 마음은, 단순한 체험이 아니라 하나의 내적 탐색처럼 느껴집니다. 조용헌이 말하는 “섬은 안으로 파고드는 공부의 공간”이라는 말이 선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저 높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으로 깊이 내려가는 일.
3. 내수전 전망대 – 시간과 풍경이 만나는 곳
울릉도의 동북쪽 끝, 내수전 전망대는 바다와 하늘, 산이 겹치는 곳입니다. 이른 아침에 도착하면 태양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섬의 윤곽을 밝혀줍니다. 조용헌은 섬을 “기억의 보관소”라 했습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울릉도는 바로 그 말의 풍경적 해석이었습니다. 이곳에서는 과거의 시간들이 하나씩 떠오릅니다. 섬이 기억을 품는 방식은 고요하고 때론 느립니다. 바다를 마주하며 우리는 현재를 응시하지만, 섬은 과거를 불러냅니다. 내수전에서의 순간은 현재가 아닌 누적된 기억으로 존재했습니다.
내수전 전망대에서는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듯 합니다. 일출을 보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조용히 바다를 바라봅니다. 어떤 기대나 욕심도 잠시 내려놓게 되는 그 순간. 바다에 떠오르는 태양은 말 그대로 섬 전체를 감싸며 새로운 하루를 밝힙니다. 울릉도는 그 고립 덕분에 자연을 온전히 품었습니다. 도시의 일출이 전광판과 빌딩 사이에서 잠깐 스쳐가는 것이라면, 이곳의 일출은 마음을 통째로 잠식합니다. 오래된 기억이 불현듯 떠오르기도 하고, 스스로에게 묻고 싶던 질문이 조용히 피어오르기도 합니다. 섬은 그런 질문들을 꺼내게 만들어 줍니다.
4. 저동 골목과 촛대바위 – 섬의 리듬 속으로
울릉도의 저동 골목은 시간이 느리게 흘러갑니다. 좁은 길을 걷다 보면 오래된 빨랫줄, 고양이, 그리고 주민들의 작은 텃밭이 눈에 들어옵니다. 촛대바위 쪽으로 걸어가면 바위가 바다를 뚫고 솟아올라 있습니다. 『섬, 짓다』는 섬을 “수직의 신화”라 표현합니다. 수평선이 아닌 수직으로 솟는 돌과 산은 섬이 가진 긴장과 자립의 상징입니다. 울릉도는 단단하고 거칠지만 그 안에는 생이 녹아 있습니다. 저동 골목을 걸으며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섬이 지닌 생활의 리듬을 체험하는 일입니다.
저동 골목의 풍경은 어쩌면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단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도와 방식이 특별함을 만들어 냅니다. 섬의 시간은 도시의 시간보다 훨씬 느리게 흐르고, 그 흐름 속에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동화되죠. 촛대바위로 이어지는 해안 산책로에서는 파도와 바람, 바위의 마찰음이 조용한 배경음처럼 따라옵니다. 조용헌은 “섬은 사소한 것들의 총합”이라고 말합니다. 굉장한 풍경이 아닌, 소소한 일상과 자연의 조합이 섬을 완성합니다. 이 길을 걷는 일은 그 감각들을 채집하는 일이었습니다.
결론 – 섬은 멀어지지만 깊어진다
울릉도는 단지 외딴섬이 아닙니다. 조용헌이 말했듯 섬은 인간의 원형적 기억이 저장된 공간입니다. 우리는 바다를 건너 섬으로 향하지만, 사실은 섬을 통해 자신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섬, 짓다』의 문장들이 울릉도의 풍경 위에 덧입혀질 때, 그 말들이 생생하게 살아났습니다. 고립은 단절이 아니라 집중이었습니다. 울릉도에서의 시간은 짧았지만, 그 밀도는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습니다. 섬은 멀어질수록 선명해졌습니다. 그 기억은 다시 돌아오고 싶은 마음으로 남았습니다.
우리는 늘 중심에 있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가장자리에서야 비로소 중심을 제대로 볼 수 있죠. 울릉도는 그런 '주변의 철학'을 일깨우는 공간입니다. 육지의 복잡한 삶에서 한 걸음 물러나, 섬의 고요 속에 스스로를 내려놓는 시간. 그것은 회피가 아니라 재정립의 시간이 됩니다. 고립이라는 단어가 무섭게 들릴 수도 있지만, 울릉도에서의 고립은 오히려 자신을 다시 연결하는 계기가 됩니다.
『섬, 짓다』는 섬이 하나의 세계라고 말합니다. 울릉도는 단지 자연의 아름다움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그리고 자기만의 리듬을 지닌 일상은 또 하나의 문명이었습니다. 섬은 짓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스스로 지어지는 것. 여행자는 그 과정을 관찰하며, 조용히 자신의 마음도 함께 지어가게 됩니다.
돌아오는 배에서 섬은 점점 작아지지만, 마음속 울림은 오히려 커졌습니다. 멀어질수록 또렷해지는 그 풍경처럼, 이 여행도 오랫동안 남을 것 같습니다. 울릉도는 그렇게, 조용히 다가와 깊게 스며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