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은 바람의 도시입니다. 파도가 부서지는 해변, 소나무 숲을 스치는 바람, 사찰의 돌담 사이를 흐르는 바람까지, 이곳은 늘 바람과 함께 존재합니다. 이병률의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양양의 풍경과 어우러지는 책입니다. 이 책은 떠남과 고요, 외로움 속에서 피어나는 생의 따뜻한 온기를 이야기합니다. 양양은 그런 문장을 품는 공간입니다. 여행은 어느 순간 목적지를 찾기보다, 흐름에 자신을 맡기는 일이라는 걸 이곳에서 알게 된 것 같습니다.
1. 죽도 해변 – 파도와 바람이 부딪히는 자리
양양의 죽도 해변은 늘 움직입니다. 서핑보드 위의 사람들과 부서지는 파도, 모래를 따라 스쳐 가는 바람은 이곳을 정지되지 않는 풍경으로 만듭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감정을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감정이 지나가도록 둡니다. 죽도 해변에서의 바람처럼 말이죠. 그것은 머무르지 않고 흐르며, 때로는 마음을 툭 건드리고 지나갑니다. 바다를 보며 잠시 멈춰 서게 될 때, 누군가의 말이 아니라 바람의 속삭임이 더 깊게 스며들기도 합니다.
죽도 해변의 모래는 생각보다 거칠지 않았습니다. 서핑을 배우는 사람들 사이로, 혼자 파도를 바라보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해변은 언제나 다채로운 감정을 품고 있습니다. 들뜬 기대, 약간의 두려움, 고요한 몰입.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그 감정들을 조용히 관찰하고 기록하는 책입니다.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지만, 그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문장이 있다는 것. 죽도 해변에서의 시간은 그런 시간을 선사합니다. 파도는 매번 다르게 밀려왔지만, 그 안에 공통된 리듬이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도 그렇게 살아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2. 낙산사 – 바람이 머무는 절
바닷가에 이렇게 조용한 사찰이 있다는 건 언제나 놀랍습니다. 낙산사는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섭니다. 여기서는 바람이 다르게 붑니다. 절벽 끝에 세워진 의상대에 앉아 있으면, 시간의 결이 달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이병률의 문장은 그런 순간과 잘 어울립니다. “아무 이유 없이도 살아야겠다”는 고백처럼, 이유 없이 들이마신 공기조차 위로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낙산사의 고요함은 바람으로부터 오는 듯 했습니다. 조용한 움직임, 멈추지 않는 숨결. 거기엔 설명이 필요 없는 평온이 있습니다.
낙산사에서는 모든 소리가 낮게 들립니다. 사람들의 목소리, 종소리, 그리고 물 흐르는 소리까지. 그 낮음이 마음을 아래로 끌어당깁니다. 복잡한 감정도 잠시 눌러지는 기분. 절벽 위의 작은 암자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시간은 직선이 아닌 원처럼 흘러갑니다. 어떤 시작도 끝도 없이 계속 흐르고 돌아오는 감정들. 이병률은 “반복은 지루함이 아니라 위로”라고 전합니다. 그 말처럼, 낙산사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지만, 충분히 충만했습니다. 불안이 멈추고, 생각이 비워진 채로 가만히 있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진짜 쉼이었습니다.
3. 서피비치 – 파도가 밀려오고, 다시 가는 곳
서피비치는 젊고 경쾌한 에너지가 넘칩니다. 하지만 그 안에도 고요는 존재합니다. 해 질 무렵, 음악이 잦아들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조용해지면, 바람과 파도만 남습니다. 이병률의 책은 그런 순간을 좋아합니다. 굳이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서피비치의 해변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바람이 얼굴을 쓰다듬게 두는 순간, 마음이 조용히 정돈이 되는 그 순간 우리는 깨닫게 되죠. 삶에는 그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날이 필요하다는 것을.
서피비치의 밤은 낮보다 느리게 흐릅니다. 불빛이 꺼진 후에도 사람들은 해변에서 맥주를 마시고, 별을 봅니다. 바람은 낮보다 세지만, 오히려 마음은 더 편안해집니다. 이병률의 “살아있다는 감각은 때때로 멈추는 데서 온다.”라는 글 처럼 우리는 쉴 틈 없이 움직이지만, 사실 가장 필요한 건 멈춤입니다. 서피비치의 고요함은 그런 멈춤을 허락해 줍니다. 잊고 있던 감각, 고요 속에서 비로소 들리는 내 마음의 소리. 그런 순간이 있었기에 이 여행은 살아있는 생생한 감정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4. 하조대 – 나무와 바다의 끝자락에서
하조대의 소나무 숲은 특별합니다. 바람은 이곳을 지나며, 사람의 생각을 털어내듯 흔들어댑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의 문장은 조용한 응시로 가득합니다. 하조대 절벽 위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전혀 시끄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용한 숨결처럼 반복되는 파도가 마음을 낮추어 줍니다. 자연은 말하지 않지만, 가르침을 주곤 합니다. 하조대에서는 그 가르침이 바람을 통해 전해집니다. 너무 많은 말 대신, 가끔은 이렇게 고요한 공간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하조대의 아침은 특별합니다. 바람은 밤보다 부드럽고, 빛은 조금씩 퍼지며 나무 사이를 비춥니다. 오래된 소나무들은 굳건하게 서 있고, 바다는 그대로 반복됩니다. 이병률의 문장은 하조대의 풍경처럼 차분합니다. 강요하지 않고, 대신 머물게 하는 문장입니다. 여행지에서 가장 고마운 순간은, 그 장소가 나를 받아주는 느낌이 들 때입니다. 하조대가 그런 장소였습니다. 아무 말 없이 나를 맞아주고, 있는 그대로 머물게 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런 장소를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결론 – 바람이 스쳐간 자리, 남겨진 감정
양양에서의 시간은 바람처럼 흘러갔습니다. 머무르지 않고, 억지로 기억에 새기려 하지 않아도 어느새 마음에 남습니다. 이병률의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그런 여행의 감정을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하기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그저 스스로를 내려놓기 위해 떠납니다. 양양은 그런 내려놓음을 허락하는 장소입니다. 떠나는 것이 아니라, 머물렀던 모든 감각들이 우리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곳. 바람은 지나가지만, 그 감촉은 오래도록 남을 것입니다.
사람은 기억보다 감촉으로 순간을 간직한다고 하죠. 양양의 바람은 단순한 날씨가 아니라, 감정의 언어였습니다. 어느 날 불어온 바람이, 그날의 마음을 데려오고, 한 장면의 풍경을 오래 붙잡게 만들었습니다. 이병률의 글은 그런 바람의 움직임과 닮아 있습니다. 명확히 정의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감정. 바람처럼 자유롭고, 바람처럼 깊은.
우리는 늘 어떤 의미를 찾아 떠나지만, 양양은 그런 의미마저 내려놓게 하는 곳입니다. 꼭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저 바람이 불고 있으니 살아내면 된다고.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의 문장은 그런 여행의 결을 따라 조용히 걸어갑니다. 마치 이 도시의 해변처럼, 강요하지 않고, 대신 자리를 내어줍니다.
양양에서의 며칠은 짧았지만, 그 안에서 쉼과 고요, 그리고 다정한 바람을 충분히 느꼈습니다.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나도 모르게 문장을 하나 떠올렸습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그 말은 더 이상 책 속의 문장이 아니라 내 안에서 반복되는 다짐이 되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