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이라는 도시에는 독특한 이중성이 있습니다. 산업단지와 푸른 바다, 뿌연 매연과 투명한 하늘, 묵묵한 일상과 꿈꾸는 시선이 공존합니다. 그런 도시의 분위기는 김초엽 작가의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과 맞닿아 있습니다. 과학과 감정, 기술과 인간이라는 양극을 정제된 언어로 잇는 이 책은 도시 울산의 얼굴과 겹쳐집니다. 울산은 김초엽 작가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작가가 묘사하는 세계의 기저엔 언제나 현실적이고 지역적인 감성이 흐릅니다. 이번 여행은 거대한 구조물과 철제의 풍경 속에서 여전히 사람 냄새가 나는 도시 울산을 따라, 김초엽의 문장을 곱씹으며 가보려 합니다. 과학적 상상력 뒤에 감춰진 감정의 궤적을 쫓듯, 나는 이 도시의 이면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1. 장생포 고래문화특구 – 기억의 잔상과 상실의 지도
고래잡이의 과거와 보존의 현재가 공존하는 장생포는 울산의 가장 선명한 상징 중 하나입니다. 그 기억의 땅 위에 만들어진 고래문화특구는 과거의 영광과 슬픔을 동시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의 첫 이야기에서도, 과거의 선택과 현재의 상처가 교차합니다. 장생포를 걸으며 나는 한때의 번성과 지금의 고요 사이에서 괴리를 느꼈습니다. 고래를 바라보는 어린아이의 눈과, 사라진 시간을 추억하는 노인의 시선이 교차하는 그곳. 고래는 사라졌지만 그 잔상은 여전히 우리 삶의 어딘가에 남아 있습니다. 마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떠난 뒤에도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감정처럼. 장생포의 고래박물관에 들렀을 때, 전시된 뼈 모형과 영상 자료들 사이에서 한 노인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그는 과거에 실제 포경선에서 일했던 사람이라 했습니다. 사진 속의 그의 눈빛은 슬픔과 자부심이 공존하는, 무언가 복합적인 감정을 품고 있었습니다. 김초엽의 소설도 그러했습니다. 한 명의 인물이 담아내는 감정은 그리 단일하지 않았습니다. 선택과 상실, 욕망과 회복이 한 몸처럼 엉켜 있었습니다. 그리고 장생포의 거리를 걷는 내 발걸음도 무겁지 않았지만, 그 아래엔 쌓인 기억이 있었습니다. 고래를 바라보던 아이의 시선과, 노인의 삶이 이어진 그 거리에서 나는 소설의 등장인물처럼 말없이 세월을 건넜습니다.
2. 태화강 국가정원 – 생태의 복원, 관계의 회복
울산이 ‘공해 도시’라는 오명을 벗고 생태 도시로 거듭난 상징은 바로 태화강입니다. 국가정원으로 지정된 이 강변은 과거 산업화의 피해를 회복하고, 인간과 자연이 다시 손을 맞잡은 공간입니다. 김초엽의 소설 속에는 종종 ‘회복’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합니다. 유전자와 기술, 기억과 상처 속에서 인간은 다시 연결을 시도합니다. 태화강에는 ‘십리대숲’이라 불리는 구간이 있습니다. 그 대숲을 걷는 동안 나는 마치 시간의 터널을 지나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의 잎사귀 소리가 귓가를 스쳤고, 그 안에서 나는 내 감정의 잔가지들을 하나씩 정리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속 세계는 차가운 듯 보이지만 실은 따뜻합니다. 울산도 그랬습니다. 공해의 도시에서 생태의 도시로 탈바꿈한 이 강변은, 우리가 진심으로 무엇인가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그 변화는 강물처럼 조용히, 그러나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3. 울산대공원 – 미래 도시의 생태적 상상
울산대공원은 단순한 휴식처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거대한 규모, 정교한 정원 설계, 그리고 곳곳에 스며든 친환경 에너지 시스템은 ‘도시 속 생태계’라는 미래형 삶의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김초엽의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이 다루는 세계는 바로 이런 ‘가능성의 조건’입니다. 울산대공원에는 태양광 에너지를 활용한 정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앞에서 인증 사진을 찍고, 아이들은 구조물 사이를 뛰놉니다. 그러나 나는 그 장면 속에서 미래의 가능성과 동시에 불확실성을 읽었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이 겪는 현실은 언제나 낯설고 불완전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울산대공원의 풍경은 그런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가능성,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신뢰와 관계 안에 있었습니다.
4. 대왕암공원 – 바다 끝, 감정의 초점
울산 동쪽 끝, 대왕암공원에 이르면 바다가 수직으로 열리듯 시야에 들어옵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바위틈 사이로 파도가 들이칩니다.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의 마지막 이야기처럼, 이곳은 감정의 끝에 선 공간입니다. 대왕암공원에서 마지막으로 바라본 바다 위엔 어선 한 척이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 배는 정해진 길 없이, 파도를 읽으며 길을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김초엽의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감정은 언제나 예측할 수 없고, 사랑은 과학처럼 계산되지 않습니다. 나는 그 배를 오래도록 지켜보았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이 결국 마주하는 건 외로움이 아니라, 그 외로움을 함께 견뎌줄 사람에 대한 희망이었습니다. 대왕암의 거센 바람은 그 희망을 시험하듯 불어왔지만, 나는 흔들리면서도 중심을 잡는 감정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결론 – 울산이라는 이름의 온도
울산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따뜻한 도시였습니다. 차갑고 공업적인 이미지 너머엔 관계와 회복, 그리고 조용한 감정이 있었습니다. 김초엽의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은 과학이라는 외피 아래 부드러운 마음을 숨긴 이야기였습니다. 울산 역시 그러했습니다. 나는 이 도시에서,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온도를 경험했습니다. 고래의 기억과 강의 흐름, 공원의 상상력과 바다의 끝자락이 하나로 이어지며 나를 감싸줬습니다. 그 감정은 마치 잔잔한 파동처럼 지금도 가슴속 어딘가에서 계속 울리고 있습니다. 울산은 더 이상 나에게 낯선 도시가 아니라 그것은 내가 스쳐온 수많은 이야기들이 머문 장소이며, 언젠가 다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의 풍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