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마츠야마에서 『도련님』 – 유쾌하게 고집스러운, 그 청춘의 도시

by s-dreamer 2025. 4. 26.

마츠야마 관련 이미지

도련님은 정직했고, 그래서 외로웠습니다. 나츠메 소세키의 대표작 『도련님』은 일본 근대문학 속에서 유쾌하지만 진중한 청춘의 초상을 보여줍니다. 특히 ‘지방 도시’의 풍경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관계의 미묘함, 권위에 저항하며 살아가는 인물의 고집은 100년이 넘은 지금도 신선하죠. 그리고 그 이야기의 무대가 바로 시코쿠 마츠야마입니다. 시코쿠에서 가장 온화한 기후를 자랑하는 도시, 도고 온천의 따뜻함과 마쓰야마 성의 정갈함이 함께 공존하는 이곳은 『도련님』의 시대적 배경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이 도시는 마치 도련님의 마음처럼 단순하지만 복잡하고, 조용하지만 생생합니다. 그 정직한 서사를 품은 마츠야마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1. 도고 온천 – 따뜻함의 깊이를 배운 곳

도고 온천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공중 온천 중 하나입니다. 목조 3층 건물은 도련님이 머물렀던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소설에서 도련님은 온천을 자주 찾으며 마음의 피로를 씻습니다. 그곳은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회복하는 장소였습니다. 도고 온천의 김이 피어오르는 노천탕에 앉아 있으면, 그 시절 그가 느꼈던 묵묵한 위로가 전해집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상처 입은 정직함이 잠시 머물 수 있는 공간. 온천은 단지 몸을 씻는 곳이 아니라, 말없이도 이해받는 경험이 되는 곳이었습니다. 나도 도련님처럼 말없이 물속에 잠겨, 내 안의 고집과 피로를 조용히 식혔습니다.

도고 온천의 외관은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존재하는 느낌을 줍니다. 나무로 짜인 정교한 지붕, 동글게 올라간 기와, 밤이면 불이 켜지는 탑. 그 모든 것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감정을 자아냅니다. 관광객들이 붐비는 낮 시간을 피해 이른 아침 온천을 찾았을 때, 온천 수증기 너머로 보인 고즈넉한 거리 풍경은 마치 도련님이 오늘도 이곳을 걸어나올 것 같은 착각을 주었습니다. 문득, 말보다 행동이 앞섰던 그가 이 풍경 속에서 어떤 말을 남겼을까 상상하게 됩니다. '말 많은 시대, 정직한 침묵도 하나의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그의 무언의 메시지를 읽으며 나는 더욱 이 공간에 마음이 닿았습니다.

2. 마쓰야마 성 – 시대와 맞서는 고집의 무게

마츠야마 시내 중심부 언덕 위에 자리한 마쓰야마 성은 도련님의 고집과 단단함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소설 속 도련님은 권위에 아부하지 않고, 불합리한 규칙에 저항하는 인물입니다. 그 모습은 성의 곧은 성벽과 닮아 있었습니다. 마쓰야마 성의 성문을 지나면서 나는 문득 생각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얼마나 솔직한 사람을 견디는가? 그리고 그런 고집이 얼마나 외롭게 만들 수 있는지를. 도련님은 유쾌했지만,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그가 지닌 정의감은 성처럼 견고했으며, 고립의 감정마저도 품고 있었습니다. 이 성 위에 서서 바라보는 도시 풍경은, 그가 겪었을 감정의 너비를 담고 있었습니다.

마쓰야마 성의 성루에 오르면 마을 전체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낮게 지어진 가옥들과 골목길, 그리고 멀리 바다까지 보이는 그 풍경은 단순한 도시의 구획이 아니라 하나의 서사처럼 펼쳐집니다. 도련님이 왜 이곳에서 고집스럽게 정의를 지키려 했는지, 왜 그토록 오해를 사면서도 불의를 지나치지 않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가 머물던 시간은 지났지만, 성에서 내려다본 풍경 속엔 여전히 그가 지키려 했던 진심의 기운이 남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오래된 성벽을 따라 손을 문질러보며 나는 그 고집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음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외로움을 감수한 용기였습니다.

3. 도련님 박물관 – 인물과 도시의 교차점

마츠야마엔 ‘도련님 박물관’이 있습니다. 나츠메 소세키와 그의 작품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공간은, 책의 배경이 된 장소들을 실제 거리와 연결해줍니다. 박물관 안에는 옛 교사 생활을 재현한 교실과 소세키가 쓴 원고, 삽화, 당시 마츠야마의 모습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도시와 문학이 만나는 이 교차점에서 나는 『도련님』을 다시 읽었습니다. 책 속의 세계가 이 도시의 일상에서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습니다. 도련님은 허구가 아니라, 이 도시를 살아낸 누군가의 고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학이 장소와 맞닿을 때, 우리는 단어 너머의 진심을 마주하게 됩니다.

도련님 박물관의 한쪽 벽엔 그가 했던 말들이 인용문으로 전시돼 있습니다. "나는 단지 올바르고 싶었다."라는 구절 앞에 서면, 그 간단한 문장이 왜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는지 알게 됩니다. 세상은 늘 복잡하고, 사람들은 자신을 감추거나 둘러댈 여유가 많습니다. 그러나 도련님은 그런 방식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직진했고, 그래서 더 많이 부딪혔습니다. 박물관을 나서며 나는 생각했습니다. 이 도시는 단지 문학의 배경이 아니라, 그런 인물이 존재할 수 있었던, 혹은 존재하길 바랐던 장소였다고. 도시의 결은 사람을 닮고, 문학은 그 결을 기록합니다.

4. 시로야마 공원 – 사색의 골목, 삶의 온기

마쓰야마 성을 품고 있는 시로야마 공원은 넓고 한적합니다. 공원 끝자락, 단풍나무가 늘어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도련님이 책 속에서 말하던 ‘세상이 너무나도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그는 분명 따뜻한 사람이었지만, 따뜻함만으로는 세상을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시로야마 공원에서 나는 그런 도련님의 시선을 빌려 오늘을 돌아봅니다. 이 공원엔 거창한 조형물도, 사람을 압도하는 구조도 없습니다. 오히려 조용한 나무들과 벤치 몇 개가 어깨를 내어줍니다. 도련님처럼 말투는 거칠지만 마음은 따뜻한 누군가를 다시 떠올리게 만드는 공간이었습니다.

시로야마 공원의 한 벤치에 앉아 도시를 내려다보며, 나는 이 여행의 의미를 다시 정리해 보았습니다. 고집스러움과 정직함, 외로움과 회복. 도련님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사람의 성장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며 자주 마주치는 삶의 감정들ㅇ입니다. 그 정직함이 항상 환영받지는 않더라도, 누군가는 그 진심을 알아봐 줄 것입니다. 시로야마 공원의 나무들은 오래된 나이테를 품은 채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사람도, 도시도, 소설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묵묵히 누군가의 진심을 기다리는 것. 그것이 이 여행이 내게 가르쳐 준 가장 큰 문장이었습니다.

결론 – 마츠야마, 정직한 마음이 머무는 곳

마츠야마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지만, 그 감정은 오래 남았습니다. 도련님이 걸었던 골목, 바라보았을 성, 그리고 온천의 수증기 너머 남겨진 시선들. 나는 이 도시에서 단지 소설의 흔적만을 따라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대를 초월해 닿는 고집의 정직함, 그로 인해 생긴 상처와 치유의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이 도시는 여전히 말보다 마음이 먼저 가닿는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내가 이곳을 다시 찾게 된다면, 도련님처럼 누군가에게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의 용기를 다시 품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 용기가 이 조용한 도시에서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사실이, 이 여행의 마지막 장을 의미 있게 만들어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