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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에서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보령을 찾은 건 아주 조용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번 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무작정 떠나기보다 ‘작은 힐링’이 있는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챙겼다. 김금희의 문장은 언제나 크게 소리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너무 조용하지도 않습니다. 어딘가 묻혀 있던 감정을 건드려주고, 그 안에 여전히 따뜻한 온기가 있다는 걸 알려줍니다. 보령의 바다는 그런 책과 닮아 있었습니다. 거칠지 않고, 수면 아래로 오래된 파문이 번져가는 바다. 나는 이곳에서, 희미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감정들을 마주하고 싶었습니다.1. 대천해수욕장 – 사라지지 않는 여름의 그림자대천해수욕장에 도착한 날은 유난히 하늘이 맑았습니다. 바다는 잔잔했고, 그 위로 석양이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 2025. 4. 29.
구례에서 『모순』 구례는 복잡한 마음이 조용히 정리되는 곳입니다. 섬진강이 흐르고, 지리산이 감싸 안으며, 사람과 시간과 자연이 겹겹이 쌓인 마을. 나는 양귀자의 『모순』을 읽고 난 후, 이 책과 함께 이곳으로 오고 싶어 졌습니다. 모순투성이인 인생 속에서도 자신을 지켜나가는 ‘안진진’의 시선은 고요하면서도 단단했고, 그 시선과 닮은 장소를 생각하다 보니 구례가 떠올랐습니다. 이곳의 풍경은 말없이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감정의 말들이 쌓이는 시간보다 감정의 침묵이 필요한 순간이 있고, 구례는 그런 침묵을 품은 동네였다.1. 섬진강, 유연하게 흘러가는 감정구례를 지나는 섬진강은 억지로 흐르지 않습니다. 강은 그저 그 자리에 있으면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흘려보냅니다. 『모순』의 주인공 진진도 그렇게 흘러가는 사람.. 2025. 4. 29.
가루이자와에서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 자연과 건축이 어우러진 휴양지 나가노현 고원 지대에 자리한 가루이자와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휴양지입니다. 여름에는 선선한 기후 덕분에 수도권 사람들이 피서를 오고, 겨울에는 눈 덮인 풍경을 보러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울창한 숲과 맑은 공기, 세련된 상점과 레스토랑이 조화를 이루는 이곳은, 단순한 휴양지를 넘어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입니다. 나는 안도 타다오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떠올리며 가루이자와를 걸어보았습니다. 안도가 말했던 "자연과 건축의 대화"를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이곳에서, 빛과 공간, 그리고 시간의 결을 천천히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이 도시는 빠른 소비가 아닌, 느린 스며듦을 통해 여행자와 소통하는 곳입니다. 바쁜 일상에 지친 감각을 하나하나 깨우는 장소, 가루이자와. 나는 그 속에서 조금.. 2025. 4. 28.
다케오에서 『여행하는 책방』 – 책과 온천이 어우러진 도시 사가현 남서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 다케오. 이곳은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조용한 온천 마을로 알려져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시골 마을 같지만, 다케오에는 특별한 매력이 숨겨져 있습니다. 자연과 건축, 전통과 현대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는 이곳은 단순한 휴양지가 아닙니다. 책과 온천,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쌓여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도시 곳곳에 녹아 있습니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여행하는 책방』을 떠올리며, 나는 천천히 이 도시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여유로운 공기와 조용한 풍경, 그리고 사람들의 따뜻한 인사가 여행의 시작을 부드럽게 감싸는 기분이 듭니다. 다케오는 눈에 띄지는 않지만, 깊이 있게 스며드는 힘을 가진 도시입니다. 바쁜 일상에 지쳐 무뎌진 감각을 하나하나 깨우는 듯한 이곳에서, 나는 다.. 2025. 4. 28.
미야마 & 『모리의 정원』 – 계절이 머무는 마을, 마음이 쉬는 풍경 교토에서 멀지 않은 산골 마을 미야마. 초가집이 줄지어 있는 풍경은 마치 옛 그림 속으로 들어간 듯한 착각을 줍니다. 봄이면 연둣빛 잎이 마당을 덮고, 겨울이면 지붕 위에 두껍게 내린 눈이 시간을 멈추게 합니다. 전깃줄 하나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작아지고, 걷는 속도도 느려집니다. 그런 마을에서 나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모리의 정원』을 떠올렸습니다. 한 사람이 마음속 상처를 안고, 아주 조용한 곳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치유해 나가는 이야기. 미야마의 풍경은 모리의 정원처럼, 말보다 시선으로 감정을 전하는 장소였습니다.1. 전통 초가집 거리 – 기억이 눌어붙은 풍경미야마의 초가집 거리에는 수십 년, 어쩌면 백 년 가까이 같은 자리를 지켜온 집들이 있습니다. 집마다 지붕에 얹힌 짚이 겹겹이.. 2025. 4. 27.
오노미치에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 언덕과 골목, 감정이 흐르는 도시 서론 – 언덕과 골목, 감정이 흐르는 도시오노미치는 고양이의 도시이자 언덕의 도시입니다. 좁고 가파른 계단길 사이로 바다가 내려다보이고, 작은 신사와 고양이 사당이 길목마다 자리합니다. 이곳은 바쁘게 흐르는 세상과는 다른 속도를 살아갑니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나는 어딘지 모를 잔잔한 이별의 기운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다나베 세이코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떠올랐습니다. 조제와 츠네오, 서로를 사랑했지만 끝내 머물 수 없었던 두 사람의 이야기. 그 감정의 온도는 이 도시의 풍경과 어쩌면 닮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노미치는 그렇게, 사랑이 남긴 잔상을 품은 도시였습니다.1. 고양이 골목 – 조용한 존재가 주는 위로고양이 골목은 오노미치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 중 하나입니다. 계.. 2025. 4.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