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는 복잡한 마음이 조용히 정리되는 곳입니다. 섬진강이 흐르고, 지리산이 감싸 안으며, 사람과 시간과 자연이 겹겹이 쌓인 마을. 나는 양귀자의 『모순』을 읽고 난 후, 이 책과 함께 이곳으로 오고 싶어 졌습니다. 모순투성이인 인생 속에서도 자신을 지켜나가는 ‘안진진’의 시선은 고요하면서도 단단했고, 그 시선과 닮은 장소를 생각하다 보니 구례가 떠올랐습니다. 이곳의 풍경은 말없이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감정의 말들이 쌓이는 시간보다 감정의 침묵이 필요한 순간이 있고, 구례는 그런 침묵을 품은 동네였다.
1. 섬진강, 유연하게 흘러가는 감정
구례를 지나는 섬진강은 억지로 흐르지 않습니다. 강은 그저 그 자리에 있으면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흘려보냅니다. 『모순』의 주인공 진진도 그렇게 흘러가는 사람입니다. 거센 감정 앞에서도 쉽게 휩쓸리지 않고, 대신 묵묵히 생각하고 스스로 길을 만들어갑니다. 섬진강 물줄기를 따라 걸으며 나는 진진의 마음을 헤아려 보았습니다. 강물처럼 유연하면서도, 결코 잃지 않는 중심. 인생이란 결국 그렇게 흘러가면서도 멈추지 않는 것. 구례의 강물은 그 흐름 속에서 자신만의 리듬을 찾고 있었습니다.
섬진강을 따라 흐르는 길은 생각보다 조용했고, 그 조용함은 오히려 내 마음을 더 선명하게 비춰줬습니다. 물살 하나에도 감정이 실려 있는 듯했고, 바람 한 줄기에도 진진의 시선이 담겨 있는 듯했습니다. 『모순』은 누구나 겪는 혼란과 흔들림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끝내 조용히 말하고 있습니다. 진진은 스스로를 채근하지 않으면서도 끝까지 자신을 배신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강물은 나에게 그 태도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너무 빨리 떠내려가지 않고, 너무 늦게 고여있지도 않게. 나도 그렇게 흐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내 마음의 섬진강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2. 운조루, 오래된 가치가 살아 숨 쉬는 집
구례에서 가장 인상적인 공간 중 하나는 운조루였습니다. 조선시대 양반가의 옛집이지만, 그곳은 단지 전통을 보여주는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문 하나, 대청마루 하나, 다 닳아 있는 나무 바닥에도 누군가의 손길과 시간이 스며 있었습니다. 『모순』이 보여주는 삶도 그렇습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정직하고, 소박하지만 흔들리지 않습니다. 진진이 어른들의 선택과 사회의 이중성 속에서도 자기 생각을 잃지 않듯, 이 집도 시대를 지나면서 스스로의 모습을 잃지 않고 서 있었습니다. 조용히 그 곁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깊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운조루에서 마주한 한옥의 골조는, 마치 오래된 사고방식의 틀 같기도 했습니다. 『모순』 속 진진이 어른들의 말을 들으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가지려 했던 것처럼, 이 집도 외풍을 막고 안정을 유지하면서도 내면의 중심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고요한 안채에 앉아 바라본 마루 끝의 햇살. 한줄기 빛조차 이 집에서는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나는 그 순간, 진진이 왜 어떤 선택을 하지 않았는지, 무엇을 끝내 지키려 했는지를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집은 우리가 사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결국 살아가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태도는 진진처럼, 그리고 운조루처럼, 조용히 스며들며 세월을 이깁니다.
3. 화엄사, 모순을 안고 사는 마음
구례의 화엄사는 웅장하거나 장엄하지 않습니다. 대신 오래된 나무 기둥과 단청, 그리고 고요한 산사의 공기가 감정을 다독여줍니다. 나는 화엄사 범종각 앞에 앉아 『모순』의 어떤 문장을 떠올렸습니다. “모순된 세상에서 모순 없이 사는 게 과연 가능할까.” 진진은 그 물음을 품고 세상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질문은 결국 나 자신에게 돌아오는 물음이기도 했습니다. 화엄사의 고요함 속에서 나는 조금씩 나의 모순을 떠올립니다. 받아들이는 일은 생각보다 더 용기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 사찰의 침묵은 그 용기를 천천히 키워주었습니다.
화엄사에 들렀을 때, 사찰 너머로 들려오는 산새 소리와 함께 마음이 내려앉았습니다. 『모순』을 읽으며 나 역시 마음 한 구석에 붙잡고 있던 질문들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왜 나 자신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할까. 왜 삶의 한가운데서도 자꾸 뒤를 돌아볼까. 화엄사의 긴 복도를 따라 걸으면서, 나는 진진이 품었던 질문들을 되새겼습니다. 그녀는 답을 찾기보다 물음을 품고 살아가는 법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방식이 나를 깨우쳤습니다. 깨달음은 거창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저 스스로를 숨기지 않고 바라보는 태도. 그것만으로도 삶은 조금씩 깊어질 수 있다는 걸, 이 사찰이 조용히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4. 산수유마을, 삶의 색이 살아 있는 곳
봄의 구례를 대표하는 산수유마을. 노란 꽃들이 가득한 그 길은 마치 진진이 마지막에 깨달은 삶의 여운 같았습니다. 사랑과 상처, 이별과 성장. 그 모든 감정들이 섞여 모순을 이룬다 해도, 결국 삶은 피어나는 것임을. 나는 꽃잎이 날리는 길을 걸으며 『모순』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흔들리며 피고, 아프면서 자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는 것. 구례의 봄은 그런 삶의 빛깔을 조용히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건 화려함이 아니라, 버티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서 나오는 빛이었습니다.
산수유마을의 풍경은 단지 봄을 노래하는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그 꽃길은 마치 진진이 성장해 가는 장면 같았습니다. 『모순』은 삶의 복잡함을 끌어안는 이야기였고, 산수유는 그 모순 속에서도 피어나는 생의 증거였습니다. 꽃은 단지 피기만 하지 않습니다. 추위를 견디고, 눈을 이기고, 마침내 햇살을 만나 피어납니다. 나는 꽃잎이 흔들리는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진진의 마지막 문장을 떠올렸습니다. 삶은 때로 말이 되지 않지만, 그것이 곧 삶이라는 진실. 그리고 그런 삶은, 충분히 아름답다고.
구례에서의 며칠은 내 안에 머물던 모순들을 끄집어내는 시간이었습니다. '해결되지 않아도 좋다'라고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왜 『모순』이 그렇게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는지를. 진진의 이야기는 결국 우리의 이야기였고, 구례는 그 이야기를 고요한 풍경으로 들려주는 공간이었습니다. 이 마을에 스며든 모든 모순은 더 이상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따뜻하고, 인간적이었습니다. 나 역시 모순이 많은 사람이지만, 그런 나도 괜찮다는 걸 배웠습니다.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 안, 창밖으로 보이는 논밭과 산 그림자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습니다. 모순은 없앨 수 있는 게 아니구나. 오히려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 『모순』이 보여준 건 그런 삶의 태도였습니다. 그리고 구례는 그 태도를 감정이 아닌 풍경으로 말해주는 곳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정리되지 않아도 좋습니다. 모든 말에 답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는 마음. 나는 이 조용한 마을에서, 복잡한 나를 조금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