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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그곳에 가다 - 속초 & 『바다가 들린다』

by s-dreamer 2025. 4. 18.

속초 바다 이미지

속초는 언제 가도 낯설지 않은 바다 도시입니다. 북적이는 시장과 수많은 관광객, 그리고 언제나 열려 있는 바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는 조금 다른 속초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해변을 따라 걷는 것 대신, 조금 더 안쪽으로, 조용한 풍경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바다가 들린다』라는 책을 읽고 나서부터였죠. 책 속 인물들이 바다를 통해 마음을 들여다보듯, 나도 바다와 마주하는 감정의 여정을 걷고 싶었습니다. 익숙한 장소가 낯선 감정을 불러일으킬 때, 그곳은 더 이상 관광지가 아닌 ‘나만의 공간’이 됩니다. 그래서 이 책과 함께 속초로 향했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더 조용히, 조금 더 천천히. 사람들 사이에 섞이기보다는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여행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1. 설악해변, 고요함이 시작되는 자리

속초의 해변은 대부분 활기찹니다. 하지만 설악해변은 조금 다릅니다. 바다 앞에 펼쳐진 고운 모래와 적막한 파도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갈매기 소리까지 모든 것이 낮게 깔린 음성처럼 들렸습니다. 적당한 자리의 모래사장에 앉아 책을 펼쳤습니다. 『바다가 들린다』의 문장을 천천히 읽으며, 책과 바다 사이 어딘가에서 감정을 떠올리고 또 정리했습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해수욕장보다, 이런 조용한 바다가 내겐 더 어울렸습니다. 바다는 늘 같은 얼굴 같지만, 사실 매일 다르게 말을 걸어옵니다. 그날의 속초 바다는 나에게 말했습니다. “조금은 울어도 괜찮아.” 나는 그 말을 들은 듯한 기분에 한동안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2. 중앙시장 골목, 오래된 냄새 속 기억

속초의 중앙시장에 들어서면 바로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생선 굽는 냄새, 삶은 오징어의 향, 사람들의 빠른 발걸음. 이 익숙한 풍경 속에서 이상하게 낯선 감정을 느꼈습니다. 『바다가 들린다』 속 인물들이 그랬듯, 익숙함이 때론 이질감을 만들어내는 순간이 있죠. 사람들 사이를 걷다 보니 문득 어린 시절, 시장 구석에서 엄마의 손을 꼭 잡았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이 공간은 단순한 재래시장이 아니라, 시간의 통로 같았습니다. 시장의 소란스러움 속에서도 내 안의 정적은 깊어졌고, 그 틈에서 나는 오래된 나와 그 시절의 낯선 기분과 조우했습니다.


3. 등대 해변에서 마주한 감정의 실루엣

등대 해변은 속초에서 가장 감성적인 장소 중 하나입니다. 저녁이 가까워질 무렵 터벅터벅 걷다 보니 그곳에 도착했고, 점점 붉어지는 하늘 아래 조용히 앉았습니다. 『바다가 들린다』를 다시 펼쳤습니다. 해가 지고, 그림자가 길어지고, 바람이 더 서늘해졌습니다. 그 순간 나는 마음 한가운데 담겨 있던 어떤 문장을 떠올렸습니다. “감정은 숨길 수 없을 때, 바다가 되어 흐른다.” 그날의 속초 바다는 내 감정을 대신 말해주는 진솔한 또 하나의 나였습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 미처 전하지 못한 말들이 해변 위에 파도와 함께 스쳐 지나갔습니다.


4. 찻집에서 바라본 바다, 마음이 쉬는 시간

여행의 끝은 언제나 찻집에서 마무리합니다. 속초의 한 바닷가 찻집, 커다란 통창 너머로 바다가 펼쳐진 곳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셨습니다. 『바다가 들린다』의 마지막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모든 감정은 결국, 너에게 가 닿는다.” 내가 바라보던 바다는 그저 바다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고, 나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속초의 바다는 그 모든 시간을 품어주는 듯 조용히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기억도 추억도 감정도 파도처럼 출렁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날 밤, 숙소로 돌아와 책장을 덮은 후에도 마음속 파도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속초의 골목, 해변, 시장, 찻집. 이 모든 곳은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나는 단지 걷고 있었을 뿐인데, 장소가 감정을 불러내고, 감정이 다시 이야기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이 여행을 통해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다가 늘 같은 장소 같아도 늘 다른 이야기를 꺼내준다는 점입니다.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는 다르듯, 여행지 역시 매 순간 새로웠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또 속초를 찾을 것입니다. 그땐 어떤 책과 함께일지, 또 어떤 마음으로 이 바다를 마주할지 궁금해집니다.

속초에서의 시간은 그렇게 잔잔했지만 깊었습니다. 책 속 문장이 바다와 어우러지고, 그 조용한 울림이 마음속까지 스며들었습니다. 나는 여전히 많은 것을 설명하지 못하지만, 그날의 바다와 책은 내 마음을 이해해주었습니다. 그래서 가끔 그 바다를 떠올립니다. 눈앞에 펼쳐지진 않지만, 마음속 풍경은 언제든 꺼내볼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