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시민의 문장을 따라, 나라로 향하다
나라라는 도시는 일본 속에서도 특별한 고요함을 간직한 곳입니다. 유시민 작가의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여행』에서 이 도시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존재를 사색하게 만드는 공간’으로 등장합니다.
책을 통해 나라공원의 사슴과 그 풍경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나는 문득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결국 이곳으로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나라공원은 단순히 사슴이 있는 공원이 아닙니다. 고대의 숨결을 머금은 절과 신사, 그리고 그 사이를 여유롭게 오가는 사슴 무리. 마치 시간과 공간이 멈춘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이 풍경은 책 속 묘사 그대로였습니다.
“고요 속에서 삶의 의미를 되묻는 경험” – 유시민
특히 아침의 나라공원은 사람보다 사슴이 더 많은 풍경이 펼쳐지는데, 그 속에서 걷다 보면 마치 사슴이 이곳의 진짜 주인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곤 합니다.
2. 사슴과 사람, 경계 없는 공존
공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사슴 몇 마리가 다가왔습니다. 놀랍도록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느긋한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며 걷고 있었습니다.
관광객들은 사슴센베이를 손에 들고 조심스럽게 건네고, 사슴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을 받아먹습니다. 이 광경은 단순히 ‘귀엽다’는 표현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기분을 선사합니다.
“경계 없이 함께 사는 법” – 유시민
인간과 동물이 서로를 위협하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공간. 그 안에서 문득, ‘나는 너무 서두르며 살고 있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이곳에선 시계를 보지 않아도 좋고, 휴대폰을 꺼내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습니다. 사슴의 속도가 이 도시의 시간 단위가 되어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 동대사와 고후쿠지, 시간의 풍경을 걷다
나라공원은 단지 사슴만의 공간만이 아닙니다. 그 너머에는 일본 고대불교의 중심지인 동대사와 고후쿠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동대사의 대불전을 마주했을 때, 나는 거대한 불상보다 그 공간을 감싼 침묵에 더 큰 감동을 느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지만 그곳엔 여전히 묵직한 정적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이 작은 몸으로 세상을 여행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끝없이 확장해 간다.” – 유시민
고후쿠지의 오층탑 앞에 섰을 때, 나는 어떤 절경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 오래된 시간이 아직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피부로 와닿았습니다.
오래된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것이라는 걸 이 도시가 알려주었습니다. 걸음이 느려지고, 시선이 낮아지고, 말수가 줄어드는 것. 그것은 단지 피로 때문이 아니라, 공간이 주는 에너지의 영향이었습니다.
4. 존재를 되묻는 오후, 나라는 도시
여행의 마지막은 늘 조용한 성찰로 마무리되곤 합니다. 나라에서의 오후, 아무 목적 없이 공원을 걸었습니다. 벚꽃 잎이 흩날리고, 멀리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며, 사슴 한 마리가 천천히 내 옆을 스쳐 지나갑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마음이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유시민 작가는 이 도시에서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경험 중 하나를 했다고 말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 나를 다시 만나는 일”
목적 없는 산책, 의미 없는 웃음, 눈을 맞춘 사슴 한 마리.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다시 존재하게 하는듯 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타지에서 내가 아닌 것들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장 ‘나다워지는’ 공간을 찾기 위함일지도 모릅니다.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여행』을 읽고 떠난 나라 여행은 단순한 답사기가 아니었습니다. 책을 통해 도시를 만나고, 도시에서 다시 책을 떠올리는 경험.
그 순환 속에서 나는 책과 여행이 닮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둘 다, 결국은 나를 더 잘 알기 위한 방법이라는 걸. 그리고 나라라는 도시가 그 방법의 좋은 예시가 되어주었다는 것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