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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그곳에 가다 – 『아무튼, 전주』와 함께한 느린 여행

by s-dreamer 2025. 4. 15.

전주 관련 이미지

1. 책을 따라 도착한 도시, 전주

전주는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아늑히 자리한 도시였습니다. 화려한 관광지보다 골목의 고요함이 더 잘 어울리는 곳. 『아무튼, 전주』를 읽고 나서, 그전까지 관광지로만 여겼던 전주의 이미지가 바뀌었습니다.

책 속 전주는 ‘느린 감정’을 허락하는 도시였고, 골목마다 삶이 묻어나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의 시작점은 지도도 앱도 아닌 책 속 문장이었습니다.

“골목을 걷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천천히 따라 걷는다.”

그 문장이 떠올라, 그 문장처럼 저는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전주역에서 버스를 타고 한옥마을 근처에 도착한 후, 길게 이어진 돌담을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커피보다 차가 어울리는 거리, 전동성당과 풍남문, 그리고 조용한 찻집 하나. 책에서 읽은 공간들이 이토록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 조금 놀랍고, 그 감정이 설렘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여행은 일정을 채우는 여행이 아니라, 문장을 곱씹어보는 여행이었습니다.

도시를 새롭게 받아들이는 방식은 여행자의 시선보다 독자의 시선이었고, 그 다정한 눈빛이 거리의 풍경을 더욱 따뜻하게 물들였습니다.

2. 『아무튼, 전주』와 걷는 골목의 감정

『아무튼, 전주』는 도시를 기록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전주에서 보내온 수많은 계절과 풍경, 그리고 그 속에서 쌓인 감정들을 고스란히 문장에 담아냅니다.

골목길에서 마주친 고양이 한 마리, 우연히 들어선 찻집에서 마신 연잎차 한 잔, 그리고 오래된 서점에서 꺼내든 손때 묻은 책 한 권. 이런 사소한 순간들이 삶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이 책이 말하는 ‘전주의 감성’이었습니다.

저도 책 속 문장을 생각하며 골목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관광객이 몰려 있는 메인 거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조용한 전주가 시작됩니다. 낡은 담벼락과 나무문, 바람 소리, 그리고 작고 낡은 카페들.

그 안에서 마주한 감정은 ‘쉼’이었습니다. 삶이 복잡해질수록 이런 조용한 도시가 더 간절해진다는 걸, 책과 떠나는 여행에서 실감합니다. 마치 나만 알고 싶은 비밀 공간처럼, 전주는 외부의 소음을 걸러내고 감정의 결을 세밀하게 되살려주는 곳이었습니다.

3. 찻집에서의 사색, 기록이 되는 하루

한옥마을 뒷길에 있는 작은 찻집에 들어섰습니다. 실내는 나무 향기로 가득했고, 벽에는 손글씨로 써 내려간 시들이 붙어 있었습니다. 『아무튼, 전주』에서도 언급되던 공간이었습니다.

메뉴판을 넘기다가 연잎차를 주문하고, 창가 자리에 앉았습니다. 책과 함께 있기에 가장 좋은 장소였습니다. 창밖을 바라보며 책을 펼쳤고, 한 문장이 툭 다가왔습니다.

“기록은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잊어도 괜찮기 위해 남기는 것이다.”

그 문장은 여행의 이유를 다시금 되짚게 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왜 떠나고, 왜 돌아오는가. 어쩌면 그 모든 여정은 결국 나를 기록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릅니다.

이 조용한 찻집에서의 시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문장이 되었고, 오늘 하루가 더 이상 ‘흘러간 하루’가 아닌 ‘기억에 남을 하루’가 됩니다. 『아무튼, 전주』는 그 기록을 가능하게 해주는 안내서 같은 책이었습니다.

연잎차의 은은한 향처럼 책의 문장도 마음속에 천천히 번져갔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골목의 풍경이 마치 책 속 장면처럼 느껴졌고, 저는 그 장면 속에 들어가 있는 인물처럼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낯선 곳에서 익숙한 문장을 만난다는 건, 마음속 어딘가가 단단히 연결되는 느낌을 줍니다.

4. 전주에서 다시 쓰는 나

전주의 하루가 저물 무렵, 느린 걸음으로 다시 골목을 걸었습니다. 해 질 녘의 전주는 더욱 따뜻했습니다. 여행지에서의 저녁은 유독 감정이 많아집니다.

아마도 돌아가야 한다는 아쉬움, 너무 빨리 지나간 하루에 대한 미련, 그리고 아직 하지 못한 말들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튼, 전주』는 말합니다.

“어떤 하루는 그저 머무는 것으로 충분하다.”

생각보다 도서 여행은 특별한 이벤트가 없습니다. 찻집에서 책을 읽고, 서점에서 잠시 머물렀고, 골목을 걸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런 평범함이 저를 다시 쓰게 합니다.

전주라는 도시는 책을 통해 다가왔고, 책은 다시 저를 전주로 이끌었습니다. 그 감정의 순환 속에서 스스로 조금은 단단해졌고, 조금은 가벼워졌습니다.

기록이 쌓이고, 여행이 문장이 되고, 결국 그 문장이 저라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 전주는 그런 여정을 조용히 허락해 주는 도시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마지막으로 책장을 넘기며 하나의 문장을 다시 읽었습니다.

“사람은 결국 자신을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

전주는 제가 저를 잊지 않도록, 제 마음을 다시 적어내게 만든 도시였습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이 기록들을 통해 오늘의 감정을 오래도록 꺼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