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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동에서 『아무튼, 비건』

by s-dreamer 2025. 4. 19.

비건 관련 이미지

서울의 골목 중 유독 감정이 잘 들리는 곳이 있다면, 그건 연남동일 것입니다. 번화한 홍대 거리에서 살짝 벗어난 이 동네는, 어느 순간부터 조용한 위로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골목마다 독립 서점과 감성 카페, 채식 식당, 그리고 고양이가 어슬렁거리는 작은 공원까지. 처음엔 ‘힙하다’는 말로 이 공간을 설명했지만, 이제는 ‘조용히 나를 만나는 동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무튼, 비건』을 읽고 난 뒤 이곳이 다시 보고 싶어 졌습니다. 세상을 향해 소리치기보다, 조용히 말 걸고 싶을 때. 그럴 땐 연남동이 어울리죠. 비건이라는 삶의 태도도, 이 조용한 골목과 어딘가 닮아 있었습니다.


1. 채식 식당에서의 느린 점심

연남동에는 비건 또는 비건 프렌들리한 식당들이 꽤 많습니다. 그중 제가 찾은 곳은 조용한 골목 끝에 있는 작은 식당. 마침 점심시간을 피했기에,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메뉴판을 넘기며 『아무튼, 비건』 속 문장을 떠올렸습니다. “나는 가끔 나의 윤리를 음미합니다.” 이 식당에서의 한 끼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조용히 확인하는 의식 같습니다. 두부를 주재료로 만든 버거, 콩으로 만든 수프, 그리고 샐러드. 모든 것이 부드럽고 자연스러웠습니다. 채식을 선택하는 건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일상에서의 조용한 선택일 뿐이라는 말이 실감 났습니다. 그 한 끼는 말없이 나를 위로해 주는 감정의 표현이었습니다.

2. 책방에서 발견한 나의 태도

골목을 걷다가 들어간 독립 서점. 책장을 넘기다 『아무튼, 비건』이 다시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미 읽은 책인데도, 연남동이라는 공간에서 다시 만나니 또 다른 문장처럼 느껴졌습니다. 책은 나에게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가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보여줬습니다. 거절은 늘 불편한 일이지만, 때로는 그런 태도가 삶을 더 정돈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 책방에서 나는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비건을 실천하지 않아도, 그 삶의 태도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조용히 선택하고, 말없이 실천하는 사람들의 삶. 그것이 연남동이라는 공간에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그날 작은 노트를 한 권 샀고, 그 위에 이런 문장을 적었습니다. “오늘도 나는 조용히 괜찮은 방향을 선택한다.”

3. 연트럴파크, 고요하게 걷는 오후

연트럴파크라 불리는 공원길은 늘 사람들로 붐빕니다. 하지만 조금만 비켜서 걷다 보면 조용한 그림자처럼 골목이 펼쳐집니다.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책을 다시 펼쳤습니다. 『아무튼, 비건』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살면서 나를 가장 부드럽게 만든 것이 있다면, 그건 채식이었다.” 도시에선 늘 강해져야 한다고, 버텨야 한다고 배웠지만, 이 문장은 그 반대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부드러움, 수용, 비움. 연남동의 오후는 그런 감정을 품기에 충분했습니다. 천천히 걷는 사람들, 웃는 얼굴, 느긋한 걸음. 이곳에서는 나도 조금은 부드러워질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강해지지 않아도,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괜찮은 사람이 되는 법. 그것을 이 거리에서 배웁니다.

4. 작은 비건 마켓에서의 만남

연남동 한편에서 열리고 있던 비건 플리마켓. 수제 잼, 비건 쿠키, 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화장품들. 사람들은 조용히 물건을 보고, 상인들은 다정하게 설명을 덧붙입니다. 『아무튼, 비건』은 단지 채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결국은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죠. 누군가의 신념이 누군가의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이 마켓에서도 느낍니다. 소비도 관계도 조금 더 부드럽고, 천천히. 연남동이 가진 느린 결은 그런 감정과 잘 맞아떨어집니다. 낯선 사람과 나눈 짧은 인사, 작은 미소 하나가 오래 남았던 하루. 그건 어떤 말보다 깊은 연결이었습니다. 말없이 닿는 감정은 가장 오래 남기도 합니다.


결론

연남동은 특별합니다. 그저 유행의 동네라기보다, 어떤 생태와 감정이 공존하는 장소라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아무튼, 비건』이 전하는 가치도 그렇습니다. 단순한 채식주의자가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을 더 섬세하게 바라보는 사람. 그런 삶의 태도가 연남동의 숨결과도 닮아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 골목을 걷는 사람들 중에도 비건을 실천하지 않더라도 조용히 다른 생명을 존중하고, 일상의 소비를 다시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지 모릅니다. 그것이야말로 이 책이 우리에게 건네는 질문이기도 하죠. 연남동에서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하려고 애쓰기보다, 그냥 그 물음을 품고 걷기로 했습니다. 때로는 어떤 질문은 바로 답을 내는 것보다 오래 들여다보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연남동의 저녁 공기는 서늘했고, 햇살은 서서히 골목 끝으로 스며들었습니다. 그 아래를 걷는 내 그림자가 부드럽게 흔들렸습니다. 오늘 하루를 조금 더 다정하게 살아낸 나 자신이 기특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내일도 조금은 더 천천히, 더 느긋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비건』의 한 페이지가 아니라, 내 삶의 한 문장이 되어주는 여행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연남동이 말하지 않아도 내 기분을 알아채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죠. 식당에서의 조용한 응대, 서점에서의 작은 손글씨 추천 문구, 마켓에서 주고받는 짧은 인사 한마디. 모든 순간이 내 감정을 무겁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조용한 친절’이라는 말이 있다면, 이 동네가 그랬습니다. 『아무튼, 비건』이 말한 것처럼, 세상을 바꾸는 건 거대한 목소리가 아니라 일상 속 작고 반복되는 선택이라는 사실을 연남동은 삶으로 보여줬습니다.

 

비건이라는 단어는 이제 나에게 단지 먹는 방식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메타포가 되었습니다. 세상을 향해 다정하고, 자기 자신에게도 부드러운 태도. 연남동의 골목에서, 나는 그 메시지를 다시 만났습니다. 내가 걷는 길이 정답일 필요는 없지만, 그 길에서 무엇을 보고 어떤 마음으로 서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그렇게 나는 또 한 번, 책과 공간이 함께 만들어준 위로를 천천히 품은 채,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