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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에서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by s-dreamer 2025.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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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을 향한 여행은 계획보다 직감에 가까웠습니다. 피로가 조금씩 쌓여가던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났다. ‘기본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 그 말이 곧 이 책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유지혜의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는 수많은 위로의 말보다 조용하고 단단한 한마디로 마음을 움직이는 책입니다.

복잡한 감정들을 단정히 정리해 주는 글들 속에서 나는 자주 멈춰 서곤 했습니다. 그 마음으로 순천을 찾았습니다. 풍경이 말없이 위로하는 도시. 단순한 풍경에 감정이 잠기고, 느리게 걷다 보면 복잡했던 마음도 조금씩 가라앉는 것 같습니다. 나에게 순천은, 기본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도시였습니다.

1. 순천만 갈대밭 – 비워내야 보이는 것들

순천만 갈대밭을 걷기 시작한 건 오후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햇살이 길게 누운 갈대 위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갈대는 바람에 따라 흔들리지만, 결코 부러지지 않았습니다. 그 유연함이 낯설고도 부러웠습니다.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의 문장도 그런 느낌입니다. 단단하게 말하지 않지만, 오래 남는 문장. 갈대밭을 걷다 보니 어느새 복잡한 생각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비워야 보이는 것이 있다는 말을 실감케 했습니다. 생각을 채우기보다 비우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회복이라는 것을, 나는 순천의 바람 속에서 깨달았습니다.

순천만 갈대밭을 걷다 보면 어느새 마음속 생각들이 천천히 정돈됩니다. 갈대는 무성했지만, 정돈된 풍경이었습니다. 바람은 일정한 리듬으로 흔들렸고, 그 속에서 나는 오래된 고민을 되새기고 있었습니다. ‘나는 지금, 나답게 살고 있는 걸까?’ 유지혜 작가가 말하듯, 어떤 질문은 정답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그저 계속해서 묻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갈대 사이를 지나며 나는 내 안에 숨어 있던 그런 질문들과 마주했습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마음 한편이 가벼워졌습니다.

2. 국가정원 – 자연이 알려주는 균형

순천만 국가정원은 화려하지 않지만 정갈했습니다. 색색의 꽃들이 조화를 이루고, 물길이 흐르며 나무는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자연은 자기 역할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유지혜의 글에서도 그런 질서가 느껴졌습니다. 지나치게 화려하거나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적당한 거리의 위로. 국가정원을 걷는 일은 마음의 정원을 정리하는 일과 닮아 있었습니다. 나는 오랜만에 핸드폰을 꺼두었고, 걸음에 집중했습니다. 익숙한 것들이 낯설게 느껴질 때, 비로소 새로운 감정이 고개를 듭니다. 나는 그 조용한 풍경 속에서, ‘기본’을 다시 마주했습니다.

국가정원의 한 모퉁이에서 나는 오래도록 앉아 있었습니다. 눈앞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고, 연못 위를 지나는 오리와 잎새들이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 느린 움직임에 마음이 동화되었습니다. 도시의 일상 속에서는 나조차 조급하게 나를 몰아세우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저절로 흐르고 있었고, 나는 그 흐름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유지혜의 글 속 문장을 하나 떠올렸습니다.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고,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잊어버리는가.” 순천의 정원은 그 말을 눈앞에서 증명해주고 있었습니다.

3. 낙안읍성 – 느리게 살아도 괜찮다는 확신

낙안읍성은 시간이 멈춘 듯한 마을이었습니다. 돌담길과 초가지붕, 작은 가게들. 모든 것이 조용히 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급하게 지나치던 도시의 풍경과는 달랐습니다. 이곳에서는 조급해질 이유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느림’은 이곳에서 더 선명해졌습니다. 빠르게 소비되는 정보, 감정, 관계에 익숙해진 우리는 종종 자신을 잃곤 합니다. 낙안읍성의 오래된 돌길을 걸으며 생각했습니다. ‘빨리’보다는 ‘꾸준히’가 더 어렵지만, 더 오래 남는다고. 느리게 살아도 괜찮다는 확신을, 이곳에서 다시 배웠습니다.

낙안읍성에서 만난 한 부부는 손을 잡고 걸음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낡은 외투를 입은 채 천천히 골목을 걷는 그들의 뒷모습이 유난히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함께’라는 단어가 주는 울림. 유지혜의 글에서는 사랑과 인내, 그리고 반복되는 일상 속의 다정함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 읍성의 풍경은 그런 감정을 눈앞에 펼쳐 보였습니다. 느림은 결코 뒤처짐이 아니며, 오히려 더 많이 누리는 방식이라는 걸 새삼 실감했습니다. 낙안읍성의 돌길은 오늘 나에게 그런 속삭임을 전해주고 있었습니다.

4. 순천 드라마 촬영장 – 내가 자란 기억의 풍경

순천 드라마 촬영장은 마치 과거의 한 시절로 들어가는 문 같았습니다. 오래된 간판, 투박한 가로등, 학교 운동장.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이 오히려 마음을 오래 붙잡았습니다. 유지혜의 글처럼, 이곳의 풍경도 감정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해도 충분합니다. 카메라는 넣어두고, 조용히 걷기만 했습니다. 누군가의 삶이었고, 나의 과거였을 수 있는 길. 익숙하고 편안한 풍경은 때때로 우리가 잃어버린 감정을 되살립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우리가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드라마 촬영장의 골목을 걷다가 오래된 우체통을 발견했습니다. 먼지가 내려앉은 그 우체통을 보며, 나는 오랫동안 쓰지 못한 편지 한 통을 떠올렸습니다. 보내지 못한 말, 전하지 못한 마음. 유지혜의 문장 중 “말하지 못한 말들이 마음속에 눌려 남아 있다면, 그것도 결국 사랑이었다”는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그 우체통에 그 말을 넣어 보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과거의 나와 짧은 화해를 했습니다. 과거를 단순히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의 나를 있는 그대로 끌어안아주는 일. 순천의 시간은 그렇게 나를 받아주었습니다.


결론 – 기본은, 여전히 우리를 지켜주는 것

결국 여행은 풍경을 보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를 바라보는 일이라는 걸 다시 느낍니다. 순천에서도 그렇게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는 말처럼, 삶은 거창하거나 복잡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놓치고 있던 기본들을 하나씩 다시 붙잡는 일. 그게 우리가 다시 나아갈 힘이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조용한 도시에서 배웠습니다. 어떤 하루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깊이 오래 남습니다. 순천에서의 하루가 그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