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는 내게 오래된 기억처럼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삶이 오고 간 자리, 그 자취는 흙 속에도, 물속에도 남아 있었습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백제권』을 들고 부여에 도착한 날, 나는 이 도시가 단지 ‘유적의 도시’만은 아니라는 것을 금세 알게 되었습니다. 이곳에는 사라진 왕국의 숨결이 남아 있었고, 동시에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그 위에 자연스레 겹쳐져 있었습니다. 나는 부여의 시간을 걷기 위해, 그리고 그 속에서 내 삶의 온도를 다시 재기 위해, 이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1. 정림사지 – 완벽하게 불완전한 아름다움
부여의 중심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곳은 정림사지였습니다. 5층 석탑은 그 자체로 말이 필요 없을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단순히 ‘잘 지어진 건축물’이어서가 아니라, 시간의 풍화와 상흔까지도 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유홍준은 “무너진 돌 하나에도 역사와 예술이 깃든다”라고 했고, 정림사지 석탑은 그 말의 실체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완벽하지 않아서 더 아름다운 구조물. 나는 석탑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흠 없이 다듬어진 현대의 어떤 것보다, 이 오래된 탑은 훨씬 더 인간적인 울림을 주면서 서 있었습니다.
정림사지 석탑 앞에서 나는 오랜 시간 발길을 떼지 못하고 서성였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니 작은 박물관과 고요한 공원이 있었고, 평일 오후의 햇살은 석탑의 옆면을 천천히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석탑은 무너지지 않고 견뎌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웅장한 위엄을 품고 있었습니다. 유홍준은 이 탑을 ‘가장 한국적인 비율의 석탑’이라 말했는데, 나는 그 말속에서 절제된 품격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웠습니다. 나는 정림사지에서 백제라는 나라가 예술과 감성의 나라였음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2. 궁남지 – 연못 위에 뜬 기억의 조각들
백제 무왕이 조성했다는 궁남지는 너무나 아름다운 연못이었습니다. 연꽃이 피는 여름철이라면 더없이 장관이겠지만, 내가 방문한 계절은 아직 연이 피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연못은 그 자체로 고요했고, 물 위에 드리운 그림자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습니다. 유홍준은 이곳을 ‘백제 정원의 정수’라고 표현했습니다. 나는 궁남지를 천천히 돌며, 내 안에 있는 사적인 연못을 떠올렸습니다. 그 속엔 어쩌면 오래전 놓쳐버린 감정, 잊은 듯 기억나는 얼굴, 그리고 말하지 못했던 문장들이 고요히 잠들어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궁남지를 걷는 동안, 물소리 대신 내 발걸음 소리가 더 크게 들렸습니다. 사람들의 웅성임이 잦아든 틈, 연못 위에 작은 바람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유홍준은 이곳이 '자연과 인공이 아름답게 공존하는 정원'이라 표현했습니다. 나는 벤치에 앉아 책 한 구절을 펼쳤습니다. “연못은 백제인의 세계관이다.” 물이라는 존재는 흘러가지만, 그 안에 하늘을 비추고 꽃을 피우며 생명을 품습니다. 부여의 궁남지는 그런 연못이었습니다. 사라졌지만, 끊임없이 자신을 비추며 존재하는 장소. 나 또한 그 물 위에 내 감정을 비추어 보고 있었습니다.
3. 부소산성 – 역사를 걷는다는 것
부소산성에 오르는 길은 그리 험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길의 매 순간은 조용한 무게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유홍준이 말했듯, “이곳은 역사와 맞닿은 산책로”였습니다. 나무 사이로 비치는 빛, 굽이진 성곽, 발 아래 흙길의 감촉. 모두가 조용히 말을 건넸습니다. 부여에서 가장 극적인 장소 중 하나인 낙화암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 이야기를 새삼 실감했습니다. 꽃처럼 흩어진 백제의 마지막. 하지만 그 끝이 반드시 비극이지만은 않았습니다. 유홍준의 글은 늘 그렇듯, 그 뒤에 남은 것의 의미를 붙잡게 해 주었습니다.
부소산성의 능선에서 내려다본 부여 시내는 조용하고 담백했습니다. 나지막한 지붕들과 그 사이사이로 흐르는 백마강. 낙화암에서 내려다본 강물은 단순한 물줄기가 아니라, 그곳에는 누군가의 최후가, 선택이, 절망과 존엄이 함께 녹아 있었습니다. 나는 그 경계에서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유홍준은 이 장소를 “백제가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남아 있는 마지막 자리”라 표현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떠올리며, 이 장소가 단순히 전설로 치부되기엔 너무도 실존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4. 백제문화단지 – 재현된 공간에서 만난 실감
백제문화단지는 말 그대로 ‘재현의 공간’입니다. 모형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이곳에서 더 많은 상상을 할 수 있었습니다. 백제금동대향로, 왕궁, 거리. 유홍준은 이런 공간을 “거짓을 통해 진실을 말하는 방식”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그 말의 의미를 체감했습니다. 실제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뛰노는 재현된 시장에서 나는 문득, 백제의 사람들도 이렇게 평범한 하루를 살았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유적은 돌 위에만 남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도 남아야 한다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백제문화단지를 걸으며 나는 자주 멈춰 섰습니다. 거리 곳곳에 놓인 돌, 문양, 벽화, 창호 하나하나가 정성스럽게 재현되어 있었습니다. 이 공간이 단순한 테마파크가 아닌 이유는, 그곳에서 ‘삶의 냄새’가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유홍준은 이 단지를 통해 백제의 정체성이 ‘이해되고 기억될 수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백제의 문화는 단절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어떤 형태로든 우리 일상 속에 살아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결론 – 부여, 내 안에 남은 사비의 시간
부여는 조용히 남아 있는 도시였습니다. 유홍준이 반복해서 강조했던 것처럼, 문화유산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의 감각입니다. 나는 정림사지의 탑 앞에서 멈췄고, 궁남지의 물결을 따라 사유했고, 부소산성의 길 위에서 역사를 느꼈으며, 백제문화단지에서 삶의 잔상을 상상했습니다. 이 여행은 마치 내가 백제의 시간을 따라 걷는 동시에, 내 삶의 결을 다시 더듬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은 것들. 부여는, 그 모든 것의 온전한 증거였습니다.
부여는 눈에 보이는 유산보다, 그 안에 머물렀던 감정과 생각들이 더 오래 남는 도시였습니다. 유홍준은 책에서 “문화유산은 돌이나 흙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라고 말합니다. 나는 그 말을 되뇌며, 부여 곳곳에서 누군가의 손길과 시선을 따라 걸었습니다. 모든 유적이 설명보다도 더 많은 이야기를 속삭이고 있었습니다. 유적은 단지 오래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의 내가 나를 이해하게 하는 문장이 되었고,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질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 날 저녁, 궁남지 근처의 조용한 골목에서 벽에 기댄 채 책장을 넘겼습니다. 유홍준의 문장 하나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문화유산은 기억의 확장이다.” 그 말이 내 여행의 결론처럼 느껴졌습니다. 나는 부여에서 단순히 유적을 보고 온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기억과 감정, 그리고 지금을 비추는 거울을 만나고 온 셈이었습니다. 그렇게 부여는 내 삶의 한 문장처럼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오래도록 그 자리에 있는 것들은, 늘 그렇게 천천히 나를 바꾸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