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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by s-dreamer 2025. 4. 19.

도쿄 이미지

도쿄는 언제나 특별한 이름입니다. 타국의 수도라는 상징성 때문이 아니라, 도시의 섬세하고 조용한 리듬 때문이죠. 수많은 사람들이 걷는 길인데도 혼자 걷기에 좋은 도시. 복잡한 지하철 노선 속에서도 자기만의 방향을 잃지 않는 곳. 이번 도쿄 여행에서는 특별한 관광지를 찾지 않았습니다. 쇼핑도, 인기 있는 맛집도 목적은 아니었고, 대신 마음이 조용해지는 길을 걷고 싶었습니다. 이번 여행에 동행한 책은 바로 백세희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입니다. 감정의 진폭이 큰 하루하루 속에서, 어쩌면 이 도시가 내 안의 혼란과 평온을 동시에 비춰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1. 진보초, 책과 고요의 거리

도쿄의 진보초는 헌책방 거리로 유명합니다. 오래된 책 냄새와 조용한 걸음 소리만이 공기를 채우고 있습니다. 이 거리 한쪽에 자리를 잡고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다시 펼쳤습니다. 책 속 문장 하나하나가 마치 진보초의 가을 햇살처럼 조용히 마음을 데워 주었습니다. “나는 내가 나를 너무 싫어했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어쩐지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였던 지난날이 떠올랐습니다. 진보초의 거리엔 자기 자신과 화해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골목, 책장 사이에서 스스로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도쿄의 거리에서, 나는 감정이라는 단어를 조금 덜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낡은 책장이 열릴 때 나는 그 안에서 과거의 나를 마주했고, 그저 책 속 문장이 아닌 나 자신의 감정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2. 시모기타자와, 흘러가는 감정의 리듬

시모기타자와는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동네입니다. 오래된 카페와 독립서점, 중고 의류 가게들이 혼재된 골목은 도시 속에서도 유난히 감성적입니다. 이곳에서 아무 계획 없이 걷다가 또 아무 의미 없이 앉았습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말하듯, 감정이란 이유와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순간들이었습니다. 그저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죠. 시모기타자와의 거리는 그런 ‘흘러감’을 허락하는 공간이었습니다. 갑자기 들이닥치는 감정에도, 아무도 놀라지 않고 가만히 흘려보내는 분위기. 그런 무심한 온기가 위로가 되었습니다. 감정이란 고장난 기계처럼 고쳐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흘러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그런 동네였습니다.

3. 우에노 공원, 나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곳

우에노 공원은 넓고 조용했습니다. 일요일 오후였지만, 사람들은 조용히 벤치에 앉아 있거나 산책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이번엔 호수 앞 벤치에 앉아 책을 펼쳤습니다. “나는 별일 없이 사는 것도 어려웠다.” 책 속 이 문장이 유난히 크게 다가왔습니다. 별일 없다는 말이 얼마나 어려운 상태인지, 우에노의 풍경은 그걸 조용히 인정해 주는 듯했습니다. 아무도 날 쳐다보지 않았지만, 아무도 나를 외면하지도 않는 공간. 그곳에서 나도 모르게 울컥한 울음을 참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햇살이 책장 사이로 들이쳤습니다. 도쿄의 오후는 햇살처럼 따뜻하고 조용히 나를 품어주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이 허공에 머무는 게 아니라 내 마음에 닿는 듯 했습니다.

4. 나카메구로, 감정이 정리되는 골목

도쿄에서 가장 좋아하는 동네를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나카메구로를 말할 것 같습니다. 메구로 강을 따라 걷다 보면, 도시의 소음은 점점 줄어들고 대신 나 자신과의 대화가 시작됩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가방에 넣은 채 걸었습니다. 강물은 흐르고, 사람들은 웃고,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오후의 공기를 부드럽게 채웁니다. 감정을 정리한다는 건 어쩌면 이렇게 조용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마음은 천천히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그 조용한 흐름 속에서 나도 내 감정을 받아들이게 만들어 줍니다. 나카메구로는 그런 ‘회복’의 장소였습니다.


그날 밤 도쿄의 조용한 골목을 걷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어디에서부터 괜찮아지고 있었던 걸까. 혹은 여전히 괜찮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는 걸까.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문장들이 도쿄의 풍경 안에서 다시 떠올랐습니다. “나는 기분의 파도를 타고 산다.” 이 말처럼, 오늘 하루도 수십 번의 파도가 밀려왔고 또 밀려나갔습니다. 도쿄는 그 모든 감정을 조용히 받아주는 공간이었습니다.

밝은 불빛과 그 가운데 아기자기한 골목과 적당한 소음들은 외로운듯 외롭지 않은 순간들을 엮어주었습니다.

 

편의점에서 우유를 고르고, 자동판매기에서 커피를 뽑아 들고, 호텔 방에서 혼자 잠드는 일상까지도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누군가는 이 일상을 외로움이라 말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이 고요함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시간, 억지로 웃지 않아도 되는 공간. 그 안에서 나는 조금씩 나를 회복했습니다. 도쿄는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도,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다시 책장을 펼쳤습니다. 이제는 문장을 읽는 속도가 느려졌습니다. 문장을 곱씹으며 내 삶에 녹여내려는 듯, 조심스레 읽었습니다. “나는 여전히 나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이 문장이 도쿄 여행의 마지막 페이지처럼 느껴졌습니다. 이해는 어렵지만, 받아들이는 연습은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도쿄에서 조금 더 나아진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