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는 바다보다 바람이 먼저 다가오는 곳입니다. 바다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만, 바람은 늘 방향이 달라 그날의 감정을 결정짓습니다. 남해로 향하던 날도 그랬습니다. 잔잔한 바다와는 달리, 바람은 거세게 내게 불어왔습니다.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는 책을 들고 떠난 남해. 이 책은 우리의 일상적 선택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용하지만 단단한 문장으로 전합니다. 지구라는 집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묻는 책. 그 물음을 남해의 바다 앞에서 조용히 마주하고 싶었습니다.
1. 바람의 언덕, 풍요와 바람의 모순
남해의 상징 같은 바람의 언덕. 푸른 초원과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어우러진 풍경은 한없이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속 문장을 떠올리면, 이 평화도 어쩌면 허상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풍력이라는 친환경 에너지도 결국은 인간이 만든 선택의 결과. 우리는 자연을 지키기 위해 또 다른 자연을 바꾸고 있습니다. 바람의 언덕에 서서 나는 이런 모순 앞에 잠시 멈추어 섰습니다. 바람은 여전히 불었고, 나는 그 바람 속에서 인간의 욕망과 자연의 목소리가 뒤섞인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곳은 아름다웠지만, 그 아름다움이 오래가려면 우리는 더 조용히 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바람이 말하는 경고는 종종 가장 부드러운 속도로 다가오곤 합니다.
2. 다랭이논, 시간의 결을 걷다
남해의 다랭이논은 땅과 사람 사이의 타협점입니다. 가파른 경사를 깎아 만든 층층의 논. 그곳엔 노동의 흔적이 있고, 생존의 의지가 있습니다.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는 책이 보여주는 생태적 고민도 바로 이런 땅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인간은 늘 땅을 바꿔 왔습니다. 그 변화는 때로는 자연을 살리고, 때로는 망가뜨렸습니다. 다랭이논은 그 중간 어딘가에서 여전히 균형을 유지하려 애쓰는 장소처럼 보였습니다. 그 계단 같은 논을 걷는 동안, 책 속에서 호프 자런이 말한 ‘돌봄의 방식’을 떠올렸습니다. 지구를 돌보는 일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한 칸 한 칸 흙을 쌓아 올리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인간이 자연과 타협할 수 있다는 그 겸손한 태도는 지금 더 절실히 필요합니다.
3. 독일마을, 낯선 풍경 속 익숙한 질문
남해에는 독일마을이라는 독특한 공간이 있습니다. 이국적인 지붕과 색감, 그리고 외국어 간판이 이어지는 마을. 나는 그곳을 걷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익숙하다고 믿는 환경도 사실은 인공적인 풍경이 아닐까.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는 인간이 만든 시스템과 그 안에서 파괴되어 가는 지구를 보여줍니다. 독일마을의 아름다움조차 어쩌면 또 다른 개발의 이름일 수 있습니다. 그 풍경 속에서 나는 감탄과 함께 경계심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아름다운 삶’은 과연 누구의 기준이며, 무엇을 희생한 결과일까. 남해의 이 이질적인 마을은 그 질문을 내게 던졌습니다. 그 물음은 단순히 미관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었습니다.
4. 금산 보리암, 침묵과 순환의 장소
남해 금산의 보리암은 바다를 내려다보는 고요한 사찰입니다. 새벽 이른 시간, 안개 낀 산길을 올라 도착한 그곳은 세상의 소음을 모두 비워낸 듯했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마지막 장을 읽었습니다. 자연의 순환, 인간의 개입, 그리고 남겨진 과제들. 산 아래 펼쳐진 바다를 내려다보며, 나는 그 순환 속의 아주 작은 점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변화에 함께할 수는 있다는 희망. 그 조용한 사찰에서 나는 처음으로 '지구를 위한 선택'이라는 말이 구체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것은 거대한 움직임이 아니라, 나의 오늘이 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의 침묵은, 나의 내면에 작고 단단한 다짐을 심어주었습니다.
나는 바람의 언덕에서 내려오며, 다시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멀리서 보면 평화로운 풍경이지만, 그 속에는 인간의 손길이 만든 균형과 불균형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는 풍요가 가져온 파괴를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우리가 멈추고 되돌아볼 수만 있다면, 아직 늦지 않았다고. 남해의 바람은 그런 메시지를 대신 전하는 듯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빠르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얼마나 무심하게 지나쳐왔는지를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다랭이논을 내려다보며 나는 생각했습니다. 과거의 삶은 자연에 맞춰 조정되었고, 지금의 삶은 자연을 조정하려 합니다. 그 차이가 불러온 변화는 지구 곳곳에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과학자이지만 동시에 시인처럼 썼습니다. 단단하지만 부드럽게. 그 문장들을 떠올리며, 나는 논두렁 하나에도 오래된 인간의 지혜와 조심성이 담겨 있음을 느꼈습니다. 우리도 그런 삶을 다시 배워야 하는 게 아닐까. 거대한 시스템보다 작은 실천,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들이 중요해지는 시대. 다랭이논은 그 상징처럼 보였습니다.
보리암에서의 새벽은 마치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았습니다. 안개가 낀 산 아래, 바다는 침묵하고 있었고, 나는 그 속에 아주 작은 존재로 있었습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지구의 나이만큼 긴 호흡을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찰나지만, 그 찰나에 남기는 흔적은 지구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습니다. 보리암에서 바라본 그 풍경은 단지 아름다운 자연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부끄럽지 않게 남겨야 할 유산이었습니다. 나는 그 순간, 이 여행이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감각의 회복'임을 깨달았습니다.
남해의 바다는 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침묵이 더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그 앞에서 부끄럽게도 많은 소비와 낭비의 기억들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희망도 떠올렸습니다. 이 책이 내게 준 가장 큰 메시지는 '우리에게 아직 시간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남해의 조용한 풍경 속에서 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조심스럽게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작은 실천으로도 충분하다는 믿음. 그것이 바로 이 여행의 끝에 남은, 가장 조용하지만 큰 다짐이었습니다.
남해에서 돌아온 이후로도 책장을 자주 넘기게 됩니다.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의 문장은 여전히 내 일상 위에 놓여 있습니다. 이 책은 다 읽은 순간보다 읽은 후의 시간이 더 길게 남습니다. 바람이 스치고, 물이 흐르고, 해가 지는 풍경에서 문장이 떠오르고, 그 문장에서 다시 나의 태도를 돌아봅니다. 남해는 나에게 그러한 ‘느린 깨달음’을 허락해 준 곳이었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감각, 잊고 지낸 조심스러움. 그 모든 것을 되찾기 위해, 나는 다시 남해를 기억합니다.
이제 나는 조금 더 조용히 소비하고, 더 천천히 바라보고, 덜 버리는 하루를 살아가고자 합니다. 남해에서 시작된 변화는 비록 작지만, 진심이라는 방향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방향은 결국, 지구를 향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남해의 바람이 내 마음 어딘가를 스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