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는 조용하지만 깊은 결을 지닌 도시입니다. 그중에서도 다산 정약용의 흔적이 남아 있는 유적지는, 사색과 배움의 공간으로서 오래도록 사랑받아 왔습니다. 조윤제의 『다산의 마지막 공부』는 그의 삶과 학문, 철학을 다시 조명하며, 우리가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단순한 전기가 아니라, 한 인물이 쌓아온 정신을 삶 속으로 끌어오는 책입니다. 그런 면에서 남양주의 풍경은 이 책과 닮았습니다. 천천히 걷고 바라보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오늘의 여행은 철학자가 남긴 사유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길입니다.
1. 다산 유적지 – 생각의 구조를 짓는 곳
정약용 생가와 기념관, 다산 정원, 실학박물관이 한데 모여 있는 다산유적지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닙니다. 그곳은 생각의 근거지를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책에서 조윤제는 다산을 “생각을 구조화한 사람”이라 표현합니다. 그 표현이 가장 구체적으로 보이는 곳이 바로 이 유적지입니다. 한 사람의 일생이 글과 기록, 정원과 건축물에 남아 있습니다. 유적지를 걷는 것은 단지 과거를 되짚는 일이 아니라, 그가 사유했던 방식의 지형을 따라가는 일입니다. 전시된 유품보다도, 나무와 돌이 전해주는 침묵 속에 오히려 진짜 다산이 있었습니다.
다산유적지에서는 단지 과거의 인물을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남긴 공부의 방식 자체를 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생가는 검소하고 단정한 구조를 지녔으며, 정원에는 자연스럽게 배치된 나무와 돌이 시간을 품은 듯 놓여 있었습니다. 다산 정약용이 고요한 공간 속에서 수많은 글을 써 내려갔다는 사실은, 학문이 일상 안에 존재했음을 증명합니다. 그의 공부는 이론이 아니라 실천이었습니다. 유적지 안에는 ‘여유당’이라는 현판이 걸린 공간이 있습니다. ‘느긋한 집’이라는 의미의 이 이름은, 지적인 긴장 속에서도 마음의 평온을 잃지 않으려는 다산의 태도를 상징합니다. 그에게 공부는 곧 삶이었고, 삶은 곧 질문이었습니다.
2. 실학박물관 – 삶으로 이어지는 공부
실학박물관은 그 이름처럼 학문이 현실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다산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고, 글을 쓰기 위해 세상을 떠난 적도 없습니다. 오히려 모든 사유는 민생을 향했고, 구체적인 제도와 실천으로 나아갔습니다. 조윤제의 책은 이를 “앎이 삶이 되는 공부”라 말합니다. 박물관의 전시관은 무겁지 않게 구성되어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생각은 가볍지 않습니다. 오히려 책 보다 명확하게, 다산이 어떤 문제의식으로 글을 쓰고 제도를 고민했는지 드러냅니다. 철학이 현실을 지탱할 수 있을 때, 그 공부는 오래 살아남습니다.
실학박물관 안에는 그의 유배 시절 저서와 개혁안, 그리고 수많은 서간문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글을 많이 쓴 것이 아니라, 그 글들이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습니다. 조윤제는 이 책에서 “공부는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라 세상을 위한 일”이라 말합니다. 박물관 곳곳에는 오늘의 시선으로 다산을 해석한 설명문도 함께합니다. 과거를 현재로 옮겨오는 이 작업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공부의 태도가 무엇인지 돌아보게 만듭니다. 다산이 강조한 ‘목민심서’의 정신은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사람을 위하는 공부, 민생을 위한 공부, 실질을 위한 공부. 그것이 실학이고, 다산의 철학이었습니다.
3. 능내역 – 멈춘 공간, 흐르는 시간
남양주에는 시간이 멈춘 듯한 간이역이 있습니다. 능내역. 더 이상 열차가 서지 않지만, 그곳은 여전히 많은 이들이 찾아오는 장소입니다. 오래된 철길 위에 자전거가 지나가고, 나무 벤치에는 책을 읽는 사람이 앉아 있습니다. 책에서 조윤제는 다산이 유배 중에도 글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외부의 조건이 닫히더라도, 생각과 공부는 흐를 수 있습니다. 능내역은 그런 다산의 태도를 닮았습니다. 비워진 공간, 멈춘 플랫폼에서 오히려 깊은 흐름이 느껴집니다. 무언가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 공부가 될 수 있습니다.
능내역의 나무 벤치에 앉아 있으니, 유배지 강진에서 매일같이 글을 썼다는 다산의 습관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길을 만들었습니다. 조윤제는 다산을 “흐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라 말합니다. 멈춘 능내역의 플랫폼은 현재 아무 기능도 하지 않지만, 그 존재 자체로 풍경이 되고 기억이 됩니다. 사람들도 이곳에서 머물며, 잠시 쉬거나 생각에 잠길 것입니다. 우리가 멈춘다는 건 단절이 아니라, 더 깊이 바라보겠다는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공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멈춰 있는 듯 보이지만, 그 안엔 흐름이 있습니다.
4. 두물머리 – 흐름이 만나는 자리
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는 강이 흐르며 만나는 지점입니다. 그 지형적인 구조처럼, 다산의 공부 역시 사유와 실천, 철학과 일상이 만나는 지점에 서 있습니다. 조윤제는 책에서 다산의 공부를 “분리되지 않은 사고의 길”이라 말합니다. 두물머리에서 바라보는 강물은 방향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저 흘러가고, 다시 만납니다. 이곳에서는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가 아니라, 어떤 흐름을 선택하는지가 중요해집니다. 물 위에 선 나룻배처럼, 머무름보다 흐름의 태도가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두물머리에서는 강의 소리가 다르게 들립니다. 바람과 물이 얽히고, 그 안에서 고요한 움직임이 생깁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사진을 찍고, 산책을 하고, 때로는 아무 말 없이 한참을 바라볼 것입니다. 그 모습이 다산의 공부와 닮아 있었습니다. 그는 많은 말을 남겼지만, 그 말은 조용히 마음 안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습니다. 조윤제는 그의 글을 “속삭이는 설득”이라 표현합니다. 두물머리의 풍경 역시 그렇습니다. 소리치지 않고, 그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강물은 다가오지도 않고 멀어지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태도가 사람을 오래 머물게 만듭니다. 공부도 그러합니다. 억지로 끌고 가지 않고, 스스로 끌려 들어가게 만듭니다.
결론 – 오늘의 공부가 삶이 되려면
남양주는 다산의 흔적을 통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도시입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 그리고 그 공부는 어떻게 삶과 이어지는가. 『다산의 마지막 공부』는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지만, 그 물음은 오늘을 향합니다. 여행을 마친 후에도 여운은 남아 있습니다. 그 여운은 책의 문장처럼, 도시에 남겨진 말 없는 질문처럼 오래 머물 것 같습니다. 남양주에서 우리는 철학이라는 단어가 거창하지 않음을 느낍니다. 오히려 그것은 일상 속에서 걷고, 바라보고, 기록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다는 것 때문이죠.
공부는 책상 위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삶의 길 위에서 비로소 완성됩니다. 공부는 책상 위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길 위에서 만난 질문이기도 하고, 낯선 풍경 앞에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물음이기도 합니다. 다산이 걸었던 길은 멀고 고단했지만, 그 안에서 그는 흔들리지 않는 공부의 길을 세웠습니다. 남양주는 그 길을 따라 걷는 이들에게 한 가지 태도를 전합니다. 서두르지 않고, 조용히 생각하고, 묵묵히 기록하는 것. 그 단순한 자세야말로 오늘의 삶에서 가장 어려운 공부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흔히 지식을 쌓는 것을 공부라 여기지만, 다산의 길은 달랐습니다. 그는 세상을 향해 사유했고, 사람을 향해 글을 썼습니다. 『다산의 마지막 공부』는 그런 다산의 정신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부릅니다. 그 목소리는 조용하지만 선명합니다. 그리고 남양주의 강과 산, 정원과 길은 그 말 없는 목소리를 더 잘 들리게 해줍니다. 책을 덮고 돌아오는 길, 마음 한구석에 차분한 물결이 이는 듯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공부가 삶이 되는 첫 순간이었습니다.